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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은 한국의 피를 빨아 지금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한강의 기적은 기존사회의 철저한 파괴속에 한국인들의 피눈물나는 집념으로 이루어진 세계역사상 유례가 없는 단기간의 경제성장을 일컫는다.

한국은 조선왕조가 일본에 무너질때까지 사농공상의 신분이 염격히 구별되는 봉건제 사회였다.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근대화의 선두주자로 유일하게 제국주의를 택했던 아시아 국가이다. 일본의 식민지가 됨으로써 한국역사의 암흑시대가 45년간 이어졌다.

 당시 많은 나라가 제국주의를 주창하였지만 그 중에서도 일본은 신생공업국으로써 충분한 자본을 쌓지 못한 상태에서 한국을 식민지로 병합하게 됨으로써 제국주의 발전에 획기적인 전기를 가져오게 된다. 즉, 한국의 자원과 부를 모두 착취하여 부족했던 자본을 메꿈으로써 적극적인 영토확장에 나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상대적으로 가난한 국가의 식민지가 된 한국은 근대화의 수혜를 입기보다는 어떤 식민지들보다도 더 극심한 착취에 시달리게 된다. 일본은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 한국인들의 자원을 착취해가기위해 전국에 철도를 놓는데, 이를 아직까지도 울궈먹으며 한국의 근대화를 자신들이 일으켰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한국에서 한 유일한 치적이라 할 수 있는 철도사업을 벌인것은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한국인들의 근대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원수탈을 위한 운송수단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한국사회에 일본이 끼친 해악은 일일이 열거할 수가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태평양전쟁이 벌어지자 남자들은 총알받이로 징집되거나 강제노역에 동원되어 일본으로 끌려갔으며 여성들은 정신대로 납치될까 두려워 제대로 문밖출입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놓은 철도로 민가의 밥그릇과 숫가락 젓가락까지 수탈해 갔다. 이 밥그릇과 숫가락 젓가락은 한국인들이 조상에게 제사지낼때 쓰는 제기였으며 이것들은 수거되어 총알을 만드는데 쓰였다. 일본인들이 무리해서 벌인 전쟁으로 총알만들 놋쇠가 부족하여 벌어진 일이었다. 민가의 숫가락까지 수탈해가는 지경이니 쌀이니 금이니 천연자원은 남아나지를 않았다.

일본이 식민지시대동안 한국에 끼친 가장 큰 해악은 문란한 성문화와 억압적인 군대문화를 한국에 뿌리깊게 전수했다는 사실이다. 천박한 매매춘제도 음주문화의 도입이 이때 이루어졌다. 매춘은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생겨난 일이므로 매매춘 자체가 일본 식민지로 들어왔다고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매춘에도 급이 있는 것인데 인류역사상 찾아보기 힘들정도로 변태적이고 반인륜적인 일본의 매매춘 문화가 한국에 도입되었다. 식민지 이전에 한국에는 집창촌이 없었으며 술을 마셔도 곤드레 만드레 취하여 거리를 배회하는 것은 사회적 금기에 속했다. 일본인들의 투철한 남존여비사상의 도입으로 유사이래 한국여성 최대의 수난시기가 도래했다.

조선시대의 근간이 되는 유교사상이 기본적으로 남녀차별의 사상을 가지고 있으나 이는 투철한 남녀분업에 따른 것으로 가정에서 여성의 위상은 일본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존중받았다. 일례로 남편이 돈을 벌어오면 가정의 경제권은 부인의 몫이었다. 집안의 곳간 열쇠나 토지문서는 부인들이 관리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또한 뼈대있는 가문일 수록 부인에게 존대말을 쓰는 법이며, 부인에게 하대를 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신분이 낮다는 것을 역으로 증명하는 일이었다. 일본처럼 부인이 남편을 주인이라 부르는 일은 한국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다. 심지어 식민지 말기에는 일본인들이 처녀들을 군에 강제로 동원하여 성노예로 삼는 것을 피하기 위해 조혼이 성행하기도 했다. 남편이 있는 여자들은 비교적 징집될 가능성이 적었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의 일본인들에 대한 저항은 극심할 수 밖에 없었다. 도처에서 독립운동조직이 만들어졌다. 일본인들은 독립운동가들을 잡아들이고 민가의 숫가락 수까지 파악하기 위해 전국에 반상회(정확한 용어를 모르겠다.)같은 것을 조직해서 전 국민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였다. 이런 감시체제는 오늘날 북한에서 5호 감시제(역시 정확한 이름 확인필요)로 살아남아 아직까지 북한국민들을 괴롭히고 있다.

한국인들의 수난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해방의 환희도 잠시, 한국인들은 전세계 이념전쟁에 휘말려 남과 북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이런 페널티는 전범국가인 독일이 그랬던 것처럼 일본이 당했어야 마땅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일본 대신 한국이 분단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말았다. 이는 한국의 지리적 위치에 기인한 숙명이기도 했다. 5000년 역사상 한국은 중국이라는 강대국과 흉년이 났다하면 한반도로 쳐들어오는 일본 해적집단 사이에서 시달려왔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까지 한국이라는 국가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전쟁은 전후 피폐한 일본경제의 부흥을 가져오는 결정적인 기회가 되었다. 미군이 일본에 주둔하면서 일본 중공업회사들이 급속도로 성장한다. 역사적으로 일본은 한국의 고혈을 빨지 않고 자립적으로 일어설 수 없는 나라이다. 지금은 한국사회의 위기이다. 일본은 현재 국력의 쇠락으로 다시 전환점이 필요한 시점이다. 과거의 역사를 돌아볼 때 지금이 바로 일본이 한국의 고혈을 빨려는 궁리를 하고 있을 그 때인 것이다. 임진왜란과 식민지 45년으로 충분하다. 또 다시 당하지 않도록 한국민들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것이다.